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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을 건너온 역사(20) 6. 양반들의 임진별서와 민중의 삶 (3) 별서와 백성들, 호곶목장과 서적전

입력 : 2020-11-09 07:09:51
수정 : 2020-11-09 07:10:49

임진강을 건너온 역사(20)

 

6. 양반들의 임진별서와 민중의 삶

(3) 별서와 백성들, 호곶목장과 서적전

 

 

▲ 서적전과 호곶목장. 임진강 연안의 백성들은 각종 둔전부역과 별서개척에 동원되는 부담을 안아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과 재력은 서로를 뒷받침한다. 벼슬을 얻은 이들은 그 힘을 이용해 땅을 마련하는데 공을 들였다. 조선의 새로운 지배질서가 자리 잡으면서 점차 새롭게 땅을 차지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경쟁이 격화되면서 나라 재산인 둔전을 노리는 권력자도 나타나게 된다.

김안로가 공주의 세력을 빙자하여 호곶목장을 받아서 밭을 만들려고 하니, 정광필이 사복제조로 옳지 못하다고 고집하였다. () 김안로는 결국 목장을 받았다가 죄를 입은 뒤에 환수 되었다.(해동잡록)”

김안로는 조선 중종 때 권신이다. 아들이 왕의 사위가 됐는데 이 세력을 믿고 둔전을 차지하려 했다. 호곶목장은 말을 공급하기 위해 조정에서 운영하던 곳이었다. 임진강변에 자리한 호곶은 고려 때는 왕이 누각을 짓고 뱃놀이를 즐기던 곳이었고, 조선초기에는 국왕들이 사냥터로 이용하기도 했다. 호곶은 지금의 장단반도로 추정되는데 삼면이 물길로 막힌 곳이어서 목장을 두기에 좋은 지형이었다. 해동잡록은 김안로의 탐욕을 지적한다. 호곶목장은 그렇지 않아도 백성들 원망이 많았던 지역이다. 목장을 만들면서 인근의 오래 된 집이나 민가를 철거했기 때문이다. 거리에 나 앉는 백성들이 생긴 마당에 권력자까지 뛰어들어 땅을 차지하려 했으니 민심이 좋을 리 없었다. 백성들은 둔전 부역에 동원되고 또 다시 권력자의 별서개척에 연루되는 이중의 고충을 감당해야 했다.

호곶 근처에는 조정에서 관리하는 또 다른 농토인 적전이 있었다. 적전은 왕이 직접 나와 농사 시범을 보이는 의례용 토지다. 조선은 두 곳에 적전을 두고 운영했다. 임진강의 적전은 서울 동쪽 동적전과 구분해서 서적전이라고 불렀다. 서적전은 고려 말 권신 임견미, 염흥방의 토지를 몰수해서 조성했다. 처음에는 노비를 동원했지만 도망이 잇따르면서 부근 풍덕의 농민을 동원해 경작하게 했다. 풍덕의 농민들은 서적전 농사를 위해 집을 비우고 동원되는 일이 잦았다.

그 괴로움이 만 배나 되므로 풍덕의 백성들은 말하기를, ‘저 장단과 개성 사람은 역사를 면하는데, 우리들은 어떤 사람이기에 그 폐단을 받아야 하는가? 이것은 조석문이 호조판서로 있을 때 장단에다 자기의 농사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고 합니다.(조선왕조실록 성종 13114)”

서적전은 풍덕과 개성, 장단 사이에 있었다. 그런데 풍덕의 농민들만 부역에 동원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 문제는 앞서 태종 때와 세조 때도 지적돼 각 고을 농민들이 돌아가면서 경작하도록 조치한 일이 있었다. 이 문제가 성종 때 다시 불거졌는데 이유가 흥미롭다. 호조판서 조석문이 장단에 별서를 마련하면서 장단사람은 빼고 풍덕 농민들만 부역하게 했다는 것이다.

 

 

 

하포리 조석문 묘. 양반들은 별서개척을 위해 농민을 동원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양반들의 별서 마련은 부역에 시달리던 농민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었다. 양반들에게 별서란 머물러 사는 터전이 아니라 서울 생활을 뒷받침하기 위한 배후 공급지다. 잉여는 현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서울을 위한 것이었다. 양반들의 별장이 가득한 임진강 연안의 농민들에게 별서는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서울 근교라는 사회경제적 혜택의 이면에서 백성들은 이중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이런 가운데 별장으로 삼았던 곳에 눌러 살거나, 산림의 처사를 자처하며 정착하는 양반이 생기게 된다. 새롭게 찾아든 이들로 임진강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갖게 된다. 많은 지식인이 정착하고, 가까이 어울리면서 조선학문이 발흥하는 거점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중심에 율곡과 우계가 있다.

 

이재석

DMZ생태평화학교장

[임진강 기행], [걸어서만나는 임진강] 저자

 
#1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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